며칠전 약속장소에 가려고 바쁘게 뛰고 있는데 갑자기 "내가 지금 뛰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초점이 탁 풀렸다. 정신을 차리고보니 약속장소에 도착해 있었다. 가끔씩 나는 내가 있는 상황으로부터 툭 튕겨져 나와서 그 상황을 내려다보는 각도에 선다. 자동적으로 그렇게 되는건지 습관인지는 모르겠다. 심하게 많이 그랬을 때는 어렸을 때였는데 자다가 일어나서 내 상태에 대해서 계속 생각했다. 어떻게 내가 눈으로 뭔가를 보고있지. 어떻게 내가 생각을 하고 있지. 어떻게 내몸에 손이 달려있지. 하지만 아무리 애써도 '살아 있는 상태'를 내려다볼 수는 없다. 뭔가를 만지려면 표면이 있어야되고 표면이 있으려면 바깥이 있어야 된다.하지만 나는 죽음에 대해 알지 못한다. 거기까지 생각하다보면 잠이 덜 깬 상태처럼 초점이 풀리고 아무것도 집중이 되지 않는다. 그동안 시간은 계속 가고 있고 나는 옷입는것도 밥을 먹는것도 인사를 하는것도 너무 어색하다. 밥 밥 밥 밥 계속 말하다보면 밥이라는 말이 어색해지는 것처럼 눈을 뜨고 뭔가를 하고 있는 상황 자체가 말도 안 되고 설명해주는 사람도 없고 공인된 이론도 없고 나는 도대체 어떻게 사는거에 몰입할수가 있나? 신을 믿어야 하나? 하지만 목사님한테 몰입하는 건 더 어려운일이다.
이 상황에서 질문을 강제로 멈추게 하는 방법은 두가지다. 학교에 다니는것, 가장이 되는 것. 학교에 다니면 일단 등록을 했으니 뭔가를 해야만 한다. 멍청하게 출석에 대답하고 멍청하게 숙제를 하고 가끔씩 멍청하게 낮술을 마시고 메뉴를 고르고 그러다보면 시험기간이 되고 독일어 관사표를 외우고 육십년대 미국문학에 대한 에이플러스짜리 주장을 전개해나가다보면 방학이 된다. 학기를 너무 열심히 보냈으니 방학은 멍청하게 놀고 살찌고 보내면 어느새 또 학기가 찾아온다. 2학년이 되고 3학년이 되고 졸업을 하면 또 다른 학교에 가고 나는 이 생활을 올해로 16년인가 17년 했다. 그리고 가장이 된다는 것은 스스로 탐탁치 않은 일을 할 때 누가 왜 그러냐고 물어보면 '나도 가정이 있고...', '먹고살아야 하지 않겠느냐' 등등의 답변을 자신있게 해도된다는것을 뜻한다. 하지만 질문이 더 나아가는것을 멈추고 그 상태로 너무 오래 살다보면 언젠가는 꾹 눌러놓은 것들이 지진처럼 급작스럽게 터질것이다. 그 상황을 대비하는건 너무너무 어려운일이다. 결국 평소에 적당히 멍한 상태와 적당히 정신차린 상태 사이에서 왔다갔다 해야만 한다. 그래야 시간을 보낼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잔뜩 긴장한 상태에서 바닥에 떨어진 껌처럼 아무런 의미없이 시간은 흘러갈것이다.
노래 한곡을 공연한다는것은 오분동안 질문하는것을 멈추고 그시간을 화장실에 가는것처럼 당연하게 보내야한다는걸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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